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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배우는 캘리그라피

상량문 - 집을 지었음을 하늘에 고하다

by 장천 2022.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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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량문(上樑文)이란?

 

집을 새로 짓거나 중수할 때 집의 내력, 공역, 일시 등을 적어둔 문서를 뜻한다.

그 내용에 따라 창건상량문 · 중수상량문 · 중건상량문 등이 되는데,

상량대를 새로 올리게 될 때만 새로 글씨를 쓰게 된다.

 

일반인들이 한옥을 지을 땐 종보와 대들보를 올려 뼈대를 갖춘 후

상량대에 붓글씨로 간략하게 써는데,

사찰의 전각이나 궁실 · 관아 · 학교 · 사원 등에서는

별지에 상량문을 적어서 상량대에 홈을 파고 넣어 연구 보장한다.

 

상량대는 용마루(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에 가구한

종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인데,

상량문을 쓸 때는 도리의 배바닥이나 장여(도리를 받치는 나무)의 등덜미 혹은 배바닥을

다듬어 매끈하게 만들어 준다.

 

여염집에서는 장여 배바닥에 먹글씨로 써서 마루에서 올려다볼 수 있게 하지만,

공공건물에서는 대부분 종도리 배바닥이나 받침장여의 등덜미에 써서 마무리하면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는 수가 많다.

붓글씨로 쓴 상량대의 글귀를 '묵서명(墨書銘)'이라 부르기도 한다.

 

상량대에 상량문을 쓰는 모습
요즘은 이동이 편한 목재에  써서 상량대에 붙이는 식으로 그 행위가 많이 편리화 되었다.

묵서명의 내용은 집 또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조영(造營)의 사실을 적고 집 지은 뒤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찬문(讚文)을 쓰고,

이어 공역에 관계한 여러 사람의 이름들을 차례로 쓰고, 끝에 글을 쓴 시기를 적는다.

 

금강산 신계사 범종각 상량문 원고

 

내용이 많은 글귀를 지었을 때엔 종이에 따로 써서 통에 넣어 밀봉하고

그 통을 상량대에 판 홈 속에 넣어 다시 밀봉하여 기록을 보장하게 한다.

종이 대신 비단에 붓글씨로 상량문을 적기도 하며, 통도 대나무·나무·구리 등으로

가늘게 만들어 사용한다.

 

정자나 이층집 등에서는 상량문의 내용을 현판에 새겨 걸어두기도 하고,

선비들은 문집에 자기가 지은 상량문을 싣든지

자기가 읽은 명문장을 상량문에 수록하기도 한다.

 

여염집의 상량대에는

집의 좌향과 개기(開基입주·상량한 날짜와 시각을 한 줄로 내려 쓰고,

그 아래에 두 줄로 기원하는 바의 내용이 담긴 글귀를 적는다.

더러는 집주인의 방명(芳名)을 기록하기도 하는데,

이들 글의 아래위에 (()’자를 써서

천리(天理)에 순응하는 집을 지었음을 하늘에 고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상량문 편을 부분 참고하였음.

 

 

서예를 오랫동안 하다보니 예전부터 상량문을 쓸 기회가 많았다.

대부분은 상량대에 바로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2006년도에 금강산 신계사 극락전 및 대웅전과 산신각 등의 상량문은

한지에 아주 긴 문장으로 옮겨 썼는데,

그게 내가 한지에 쓴 상량문으로서는 처음이었다.

 

금강산 신계사(神溪寺)는 내 기억으로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남북 화합 차원에서

정부와 조계종이 힘을 합쳐 신계사 복원을 돕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때 저도 조계종의 부탁을 받아 <어실각> <산신각> 등의 편액과

<극락전> <영상전> <축성전> <어실각> <범종각>의 상량문을 쓰게 되었다.

이들 5곳의 상량문은 우에서 좌로 세로쓰기로 작업을 했는데,

극락전 상량문은 유난히 내용이 길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힘은 들었어도 <극락전> 상량문의 경우엔

말미에 찬()을 하신 총무원장 지관 큰스님과

나란히 서자(書者)인 내 이름이 들어간 게 큰 영광이자 보람으로 남아 있다.

 

신계사 극락전 상량문 전문
금강산 신계사 극락전 앞부분
금강산 신계사 극락전 뒷부분

 

그 후론 아주 가끔 상량대에 약식의 상량문을 쓰는 일이 종종 생기다가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2017년에 <삼각산 흥천사 대방중수기>를 의뢰받고

이번에는 가로쓰기로 썼는데,

A4 5장이나 되는 글을 적으니 폭 52cm에 대략 길이가 4.3m에 이르며,

걸린 시간도 4시간 30분이나 소요 되었다.

글자가 틀릴까봐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써 내려가야 하기에

중간에 잠깐 물을 마신 것 외엔 쉬지 않고 써야 해서 긴장감을 잠시라도 풀 수가 없었다.

 

삼각산 흥천사 대방중수기

 

삼각산 흥천사 대방중수기

 

삼각산 흥천사 대방중수기 앞부분

 

삼각산 흥천사 대방중수기 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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