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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글씨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

by 장천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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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강원도 고성 금강산 회암사(金剛山 禾巖寺)를 찾은 날은 약간의 비도 내리고 전반적으로 곰탕이었습니다. 하여
원래 계획은 신선대에 올라 울산바위를 한 눈에 보려고 했는데, 주변이 곰탕이라 수바위에 올라 멋스러운 솔낭구 앞에서 배일동 명창의 춘향가의 "갈까부다"를 멋드러지게 듣고 내려 왔네요.
 
화암사는 이번이 처음 방문이었는데, 일주문에서부터  제 아버지의 스승이신 은초 정명수(1909-2001) 선생의 글씨를 만났습니다. 은초 선생은 경남 진주 사람인데, 어찌 이 곳까지 인연이 닿았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초당 이무호 선생의 " 자우당(慈雨堂)" 글씨도 보여서 반가웠습니다. 자우(慈雨)는 현재 국민의 힘 국회의원이자 국회부의장인 주호영(대구 수성구갑)의원의 호로 옛날 학생운동을 할때 이곳 화암사에 잠시 숨어 지냈다고 하네요. 현재 유명인사가 되다보니 그의 호를 따 자우당이라 지었다고 템플스테이 홍보팀장님이 알려 주시네요.
 
화암사(禾巖寺)는 강원도 고산군 토성면 설악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표가 창건한 사찰이다. 금강산으로 들어온 진표가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를, 서쪽에 장안사를, 남쪽에 화암사를 각각 창건했다. 화엄사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12년에는 사찰령에 따라 전국 31본산 중 건봉사의 말사가 된 뒤부터 화암사라는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1950년 6.25 때 크게 파손되어 건물 1동만 남게 되었다. 1986년에는 주지로 부임한 양설이 중창하여 다시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화암사는 안타깝게도 역사는 오래 되었으나 계속된 화마로 소실과 중건을 반복해 오다 1953년 휴전 뒤에 건봉사 극락암에 있던 한 비구니가 정착하여 머물렀고, 1986년에는 주지로 부임한 양설(良說)이 중창하여 다시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삼성각, 인법당(因法堂), 금강루(金剛樓), 일주문, 미타암(彌陀庵), 요사채 등이 있고 안타깝게도 산세는 너무나 좋으나 특별한 국가유산은 없습니다.
금강산 회암사(金剛山 禾巖寺) 일주문
금강산 회암사(金剛山 禾巖寺) 편액은 은초 정명수(1909-2001)  선생의 글씨.

대웅전(大雄殿) 편액은 은초 정명수(1909-2001)  선생의 글씨.
무량수(无量壽) 편액은 추사의 글씨를 가져와 새겼습니다. 좌측 승연노인(勝蓮老人)는 추사의 호입니다.

 

자우당(慈雨堂) 편액은 초당 이무호 선생의 글씨.
역시 이 자우당(慈雨堂) 편액도 초당 이무호 선생의 글씨.
수바위 전경
수바위에서 아래를 바라본 풍경
수바위 솔낭구와 마주 선 배일동 명창

 

볼륨을 높여 보세요. 배일동 명창의 춘향가 중 '갈까부다' 한대목. 기가 맥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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