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옥산서원(慶州 玉山書院)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으로 선조(재위1567~1608)가 사액(賜額)을 내린 곳입니다. 이언적 선생은 퇴계 선생의 학문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향교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우리나라 유현(儒賢)중에 한 분이시기도 합니다.
옥산서원은 흥선대원군때도 훼철되지 않은 몇 안되는 서원중에 하나입니다.
2010년 양동마을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2019년 "한국의 서원"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재차 등재된 곳입니다.
그리고 김부식의 삼국사기 완본 9권이 보관된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갔을 땐 유물보관실이 문을 닫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아주 조금만 추려서 말씀을 드렸는데도 대단한 곳이지요. 그런 그 곳에는 옥산서원 편액이 안과 밖으로 두 개가 걸려 있는데, 밖에 걸린 건 1573(선조 9)년에 선조 임금으로부터 받은 사액을 266년이 지난 1839년 기해(己亥)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후손이 다시 고쳐 쓴 것이고, 안에 걸린 편액은 선조의 사액을 그대로 빼껴서 쓴 글입니다.
그 외에도 '역락문(亦樂門)'과 '무변루(無邊樓)', '구인당(求仁堂)' 편액은 1605년 선조 38년에 석봉 한호(1543-1605)가 썼습니다. 한호가 세상을 떠나는 해에 썼으니 그의 말년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호는 워낙에 글씨가 뛰어나 선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서사관(書寫官)으로서 궁의 모든 글씨를 담당했습니다. 특히 대자(大字) 글씨는 원나라 승려 설암(雪菴, 1264-1307)의 글씨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옥산서원에 있는 편액들도 말년작이라 필획이 조금 둔탁해지긴 하나 모두 설암의 필의(筆意)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옥산서원에 가시면 가옥의 아름다움과 함께 글씨도 음미해 보시면 더욱 마음에 와 닿는 여행이 되실 겁니다.
※설암의 법명은 부광(傅光), 속성은 이씨(李氏), 자는 현휘(玄暉)이며, 호는 설암이다. 그의 대표적인 대자(大字) 해서를 흔히 ‘설암체’로 일컬었으며, 조선의 편액서(扁額書)에 큰 영향을 끼쳤다. 명말청초의 학자 도종의(陶宗儀)는 설암 이부광에 대해 “글씨와 그림은 신품의 경지에 올랐고, 서법은 안진경(顔眞卿)과 유공권(柳公權)에서 나왔으며, 해서·행서·초서를 잘 썼다. 큰 글씨는 더욱 잘 썼는데, 조정의 편액은 모두 그의 글씨이다.”라고 하였다. 설암은 당(唐)의 안진경과 유공권, 송(宋) 황정견(黃庭堅)의 서체를 배워 독특한 대자 서풍을 이루었다. 그의 대자 해서는 흔히 액체라 불리면서 편액에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초에 이미 『춘종첩(春種帖)』, 『병위삼첩(兵衛森帖)』 등이 국내에서 간행되었고, 세종대에는 『설암법첩(雪菴法帖)』을 종친, 의정부, 육조, 집현전 등의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세종실록』 13년 6월 2일)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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