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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글씨

산동성(山東省) 제남시(濟南市) 표돌천(趵突泉) 글씨

by 장천 2023.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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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7일(금)- 21일(월)
중국 산동성 곡부(曲阜)와 태산(泰山), 그리고 돌아오는 마지막날 찾았던 표돌천(趵突泉) 여행중
가장 마지막에 찾은 표돌천부터 올립니다.
 
[산동성(山東省) 제남시(濟南市) 표돌천(趵突泉) 글씨]
‘표돌천(趵突泉)’은 중국 산둥성[山東省] 지난[济南]에 위치한 샘으로 맑은 연못 가운데 자리한 샘이 세 갈래로 높은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평균 수온은 18℃전후를 유지하며, 겨울이면 수면에 수증기가 가득하다. 물이 맑고 투명하며 그 맛 또한 달아 과거에 건륭(乾隆)이 강남(江南)에 올 때 베이징[北京]의 위취안수[玉泉水]를 이곳의 샘물로 바꿔갔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샘의 북쪽에는 송대(宋代)에 축조된 뤄위앤탕[泺源堂]이 있고, 서쪽에는 관란팅[观澜亭]이 있다. 지난[济南]8경 중 하나인 바오투텅쿵[趵突腾空]은 명청(明淸)시기에 최고로 여겨지던 경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오투취안 [Bao tu quan, Baotu Spring, 趵突泉 (표돌천)]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제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나중에 들린 표돌천을 가장 먼저 올리는 이유는 이곳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명필들의 글씨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어느 곳 보다도 눈이 번쩍 뜨이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글씨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표돌천 ( 趵突泉 ) 입구
濼源門(낙원문)은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集字)했네요.
표돌천 입구 현판, 격단(激湍)
봉산구적(蓬山舊蹟)
정치당(靜治堂)
격단(激湍)
표돌천 내 상지서원(尙志書院)

雅量含高遠 아량(너그럽고 속이 깊은 마음씨)은 높고 원대함을 품고
淸言見古今 청언(맑은 말)은 고금을 들을 수 있다.

이 주련 글씨는 청나라  하소기 ( 何紹基 )가 썼다.

 
雅量含高遠(아량함고원)
淸言見古今(청언견고금)

고원한 도량을 품고
고금의 청언을 읽네
 
하소기(何紹基, 1799-1873)
호남(湖南) 도주(道州) 사람으로 자는 자정(子貞)이고, 호는 동주(東洲), 동주거사(東洲居士), 원수(蝯叟)이다.
 
청(淸)나라 때의 관리이자, 시인, 서화가(書畵家)이다. 도광(道光) 16년(1836)에 진사(進士) 출신으로 벼슬은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 문연각교리(文淵閣校理), 국사관제조(國史館提), 광동향시정부고관(廣東鄉試正負考官), 사천학정(四川學政) 등을 역임했다.
 
벼슬을 그만두고 산동(山東) 낙원서원(濼源), 장사(長沙) 성남서원(城南書院) 등에서 강의했다. 경사(經史)에 해박하고, 소학(小學) 및 금석비판(金石碑版)에 정통했다. 서법(書法)은 처음에 안진경체(顏真卿體)를 배웠다가 한위체(漢魏體)를 융화하여 일가를 이뤘는데, 특히 초서(草書)에 조예가 깊었다.
 
 

상지서원(尙志書院)
금좌(今佐)
청심(淸沁)
땅에서 샘이 솟아오르고 있다. 예전에는 저보다 더 높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관난( 觀瀾)
​[觀瀾] 비석 글씨.
중국문화혁명때 조각난 것을 다시 붙여서 세워 놓았네요. 글씨는 호방한 해서체로서 힘찬 필세가 보는 이로 하여금 걸음을 멈추게 하네요.
​‘觀瀾’은 맹자에서 가져온 말로
'觀水有術 必觀其瀾'(관수유술 필관기난)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물결을 보아야 한다.
뒷면에는​
”十有八年 春王正月 公會齊侯于濼“
己卯五月 世春 秋白 介然 武中奇
‘18年 봄, 魯桓公 이 濼에서 齊의 襄公과 만남을 가지려 하다.’​
'기유년 5월 봄에 개연 무중기가 쓰다.'
이 내용은 <春秋左傳>의 한 대목입니다.
魯桓公과 齊襄公의 故事 대목입니다. 노환공의 부인 文姬는 齊襄公의 여동생인데, 원래부터 私通했었던 불륜관계였고, 그 만남에서 불타올랐다가 남편인 魯桓公에게 발견됩니다. 그 결과는 불같이 화가 난 魯桓公을 처남인 襄公이 신하 彭生을 시켜 때려죽이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 일이 濼水 가에서 일어났었던 일입니다......
*무중기(武中奇, 1907-2006)
제남시에서 출생, 교사이자 서예가, 공산당원으로 활동
濼源堂(락원당)
‘락원당(濼源堂)’ 아래 주련 글씨가 힘찬 북위시대 해서체를 바탕으로 청나라 조지겸의 행서 필의가 가미된 아주 둔중한 글씨라 사진에 담았다가 이제야 살펴봅니다.
趙松雪 詠泉句(조송설이 표돌천을 읊은 글)
”雲霧潤蒸華不注(운무윤증화불주) 운무가 지는 둣한 화불주산이여
波濤聲震大明湖(파도성진대명호)“ 파도소리가 대명호에 쩌렁거리는구나
一九六二年 金棻(1962년에 김분이 썼다.)
金 棻(1895~1975) 原名金树棻,字默庵,号虫覃公、시인이자 서예가이며, 경찰로도 잠시 근무, 중국인민정치협상회위 위원, 漢나라 예서와 魏나라 해서에 뛰어남.
 
易安舊居(이안구거)
'易安舊居'(이안구거)
'易安'은 宋나라 이청조의 호로 이청조가 살았던 집이란 뜻입니다.
#이청조(李淸照, 1084년~1155년 무렵)는 중국 남송의 시인이다. 이안거사(易安居士)라고 호칭했다.
북송의 제남 태생으로 학자 집안에 태어나, 18세 때 조명성(趙明誠)에게 시집갔다. 남편은 금석학자로서, 주자사를 지내면서 부부가 함께 《금석록》(金石錄)을 편찬했다. 그 후 송의 남도(南渡)이후 금의 침입으로 인하여 의해 집과 장서가 불태워졌고 남편과도 사별하여 강남을 정처없이 전전하다가 금화 지방에 살고있는 동생 이항(李沆)에게 의지하였다.
#곽말약(郭沫若,1892~1978)은 중국 쓰촨성(四川省) 출생. 191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제1고등학교 예과에서 일본어를 배운 후 1915년 오카야마[岡山]의 제6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일본 여자와 결혼. 1918년 규슈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중국의 5·4운동의 자극과 휘트먼, 타고르, 괴테 등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을 탈출, 상하이로 건너가 항일전쟁에 나섬. 국민당 정부에서 활동 도중 장제스로부터 공산주의자로 몰려 정치활동을 제약받게 되자 《굴원(屈原)》등의 사극(史劇)과 《청동시대》《십비판서(十批判書)》등의 고대사상 연구에 주력함.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정부가 성립되자 과학원장, 인민대표 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요직에 있으면서 대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함.
[네이버 지식백과]
 
망학정(望鶴亭)
'조화무극(造化無極)', 중석(中石)쓰다
歐陽中石(1928年10月—2020年11月5日)
原名瑞陸,山東肥城人,中國學者、書法家、書法教育家、京劇表演藝術家、中國書畫國際大學學術委員會主席。
 
 
담월정(淡月亭)
淡月亭(담월정)
맑은 물 위에 달이 떠 있는 정자

 

유죽당(有竹堂), 판교 경서(板橋 敬書)

'유죽당(有竹堂)'은 대나무가 있는 집이란 뜻으로
청나라 중기 대나무를 잘 그린 판교 정섭( 鄭燮)이 썼다.
 
정섭(鄭燮, 1693-1765)
중국 청대 중기의 화가. 양주 8괴의 한 사람. 자는 극유(克柔), 호는 판교(板橋). 장쑤성 흥화 사람. 건륭 원년(1736)의 진사. 산둥성 범현(笵縣), 이어서 유현(濰縣)의 지사를 역임했고 치적이 있다고 하나 원래 시와 술을 좋아하여 건륭 17년에 퇴직하고 귀향했다. 금농(金農)과 이선(李鱓), 황신(黃愼), 왕사신 (汪士愼)과 친분이 있었고, 서위(徐渭)에게 사숙(私熟)했다. 서는 해서, 전 ∙ 예를 섞은 <6분반서>라는 기고체(奇古體)에 뛰어났고, 화는 묵란, 묵죽을 잘 그렸다. 대표작 『죽림도(竹林圖)』(1753, 동경박물관). 저서에 『판교제화(板橋題畫)』, 시문집에 『판교시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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