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1일(토) 경남 양산시 통도사
통도사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에 자리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며, 8대 총림(叢林)중 하나입니다.
오전에 천성산 산행을 하고 주변에서 수구레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후 인근 통도사를 찾았습니다.
통도사는 30년 만에 처음 왔습니다. 그 사이 어느 사찰처럼 많이도 변해 있었네요. 그래도 세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빛바랜 가람들을 건드리지 않고 부분부분을 증축하고 보수하면서 전체적인 장엄함을 헤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였는데, 특히 불보(佛寶)사찰답게 국보 제290호인 대웅전(금강계단)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의 뜻을 잘 살리고 있어 너무나 좋았습니다.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어 불보(佛寶)사찰이라고도 합니다. 사찰의 기록에 따르면 통도사라 한 것은, 이 절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축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라 이름했고,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 계단(戒壇)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했으며,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濟道)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2018년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 되었습니다.
통도사에 있는 편액 및 주련 글씨들은 크게 다섯 분이 주를 이룹니다.
석파 이하응(石坡 李昰應, 1820-1898), 취산 김구하(鷲山 金九河, 1872-1965), 노천당 월하(老天堂 月下, 1915-2003), 허허당 성파(虛虛堂 性坡, 1939- ), 해강 김규진(海岡 金奎鎭, 1868-1933)
■석파 이하응(石坡 李昰應, 1820-1898)
-조선 26대 왕인 고종의 아버지이고, 대원군으로서 조선 말기 국정을 주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추사에게 서화를 배워 글씨와 난초에 능함
■취산(축산) 김구하(鷲山 金九河, 1872-1965)
-호는 구하(九河), 자호는 취(축)산(鷲山), 법명은 천보(天輔), 법호는 구하(九河)
-경남 울주군 출생
-13세에 양산 천성산 내원사에서 출가
-1910년 통도사 초대 주지
-1917년 불교계의 수장 격인 삼십본산연합사무소 제3대 위원장
-1949년 조선 불교 3대 총무원장
■노천당 월하(老天堂 月下, 1915-2003)
-충남 부여 출생
-구하스님의 상좌
-1984년 통도사 초대 방장
-1979년 조계종 총무원장
-1994년 조계종 제9대 종정
■허허당 성파(虛虛堂 性坡, 1939- )
-2014년 조계종 대종사
-2018년 통도사 방장
-2022년-현재 제15대 조계종 종정
■해강 김규진(海岡 金奎鎭, 1868-1933)
-조선 평안도 중화군 출생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서예가, 화가
-1885년 18세 때 청나라에 유학, 1894년 귀국
-왕세자 영친왕의 서화 스승, 벼슬은 시종관
-1907년에는 일본에 건너가 사진기 조작법을 배우고 돌아와 서울에 천연당(天然堂)이라는 사진관을 개설
-1913년 천연당사진관에 최초의 근대적 영업 화랑인 고금서화관(古今書畵觀)을 병설
-1915년 서화연구회 발족
-1918년 서화협회 발족에 조석진, 안중식, 오세창 등과 발기인으로 참여
-『김규진 화첩』, 『서법진결(書法眞訣)』(1915), 『육체필론(六體筆論)』(1915), 『해강난죽보(海岡蘭竹譜)』(1916) 펴냄
관음전은 조선 영조 원년(1725)에 용암대사가 처음 지었고,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海藏寶閣(해장보각) 편액은 통도사에서 가장 민화적인 글씨인데, 마지막 낙관 글에 ' 彛叟(이수)'라고 적어 놓아 彛齋 權敦仁(이재 권돈인, 1783-1859)이 쓴 것을 알 수 있다.
大光明殿(대광명전)은 <대광명전 삼성공필후 현판>에 따르면, 조선 영조 32년(1756) 10월 화재로 소실된 후 영조 34년(1758) 9월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용화전은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영조 1년(1725)에 고쳐 지은 것이다.
■석재 서병오(石齋 서병오(徐丙五, 1862~1936)
-일제강점기 교남서화연구회 회장
-조선미술전람회 부심사위원
-영남출신으로 일찍이 군수를 지냈다
-흥선대원군 문하
-묵죽과 행서에 뛰어나다
‘大雄殿(대웅전) 및 金剛戒壇(금강계단)’는 국보 제 290호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처음 지어진 후 여러차례 보수되거나 다시 지어졌다. 지금의 건물은 임지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23년(1645)에 우운대사가 고쳐 지은 것이다. 두 개의 건물을 하나로 합친 형태의 건축물로 내부의 기둥 배열이 다른 건물과는 다르다. 건물의 앞면, 뒷면, 옆면 등 어떤 방향에서 보아도 모두 정면처럼 보인다. 건물의 동서남북에 다양한 편액이 걸려 있는데, ‘大雄殿(대웅전)’편액은 영조의 글씨이고, ‘金剛戒壇(금강계단)’과 ‘大方廣佛(대방광불)’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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