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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글씨

아버지가 물려주신 선물

by 장천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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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아버지는 내게 한문과 서예를 가르쳤고,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엔 새벽에 신문 접는 일을 시켰고,
4학년쯤 되니 신문은 안 했는데, 대신 매일 깨워
충혼탑까지 같이 달렸고 또 거기에서 철봉과 팔굽혀펴기, 체조등을 하게 한 후
다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과정을 여러 해 동안 하게 했으며,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엔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무주 구천동으로 가
백련사에서 시작해 덕유산 정상까지 오르는 산행을 하게 했다.
중학교 2학년때는 지리산 천왕봉을 슬리퍼를 신고 갔다올 정도로
산행은 내게 크게 힘들지 않은 재미가 되었다.
아마도 그때 몸이 기억 해 지금 매주 하는 산행이 즐거운지도 모르겠다.

암튼 가만히 생각하니 나의 아버지가 유년시절에 부지런함을 가르쳐 주셔서 그런지
부지런은 습관이 되고 지금은 역마살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대학을 졸업한 후로는
노력, 근면, 끈기 등의 의미를 가진 작품을 많이 해온 것 같다.

먼저 <명심보감>을 공부하던 이십 대 중반에는 책 속에 있는
‘勤爲無價之寶 愼是護身之符( 근위무가지보 신시호신지부)’
단어를 지금껏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그 뜻은
‘부지런함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배요, 삼가함은 몸을 지키는 부적이다.’

사실 나는 40세 초반까지 '근위무가집보'만 알았지 '신시호신지부'를 몰랐다. 그러나 이내
후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수록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amp;amp;lsquo; 勤爲無價之寶 愼是護身之符 (&amp;amp;nbsp; 근위무가지보 신시호신지부 )&amp;amp;rsquo;


다음은 ‘踝骨三穿(과골삼천)’이다.

‘과골삼천’은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났다'는 뜻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강진 유배시절 제자인 황상(黃裳)의 글 속에 나오는 말이다.

70이 넘어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메모해 가며 책을 읽는 황상을 보고 사람들이
그 나이에 어디다 쓰려고 그리 열심히 공부를 하느냐고 비웃었다. 그가 대답했다.
“우리 선생님은 귀양지에서 20년을 계시면서 날마다 저술에만 힘써 과골, 즉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났다.

踝骨三穿, 54x70(2007년 작)

이 글을 읽고나니 다산선생께서 저술하신 500여 권의 책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이해가 간다.
그리고 역시 그 스승의 그 제자다.

황상(黃裳)
1788년 태어났다. 아명은 산석(山石)이며 호는 치원이다. 강진 유배시절 가르쳤던 다산의 제자 중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1802년 10월 10일 다산이 임시로 거처하던 강진의 주막집 골방에서 처음 스승과 제자로서 연을 맺었다. 양반이 아니어서 과거를 볼 수 없는 신분이었기에 다산은 황상에게 시를 짓도록 가르쳤다.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난 후에 지은 《설부 雪賦》라는 시는 다산을 놀라게 했으며, 이후 그가 지은 시가 흑산도에 유배된 형 송암 정약전에게도 전해져 크게 감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1808년 스승이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는 생계를 잇기 위해 농사를 지으며 간간히 홀로 옛시를 읽으며 공부하였다. 아버지 황인담(黃仁聃)은 술병으로 일찍 죽었으며 이에 황상은 시묘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강진 주막집 골방에서 함께 공부한 동생 황지초(黃之楚)가 있다.

다산이 서울로 돌아간 후 말년에는 일속산방(一粟山房:좁쌀 한 톨 만한 작은 집)에서 스승의 가르침대로 부지런함을 실천하며 시를 지었다. 제주도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는 그의 시에 감탄하여 귀양이 풀려 서울로 오르던 길에 직접 강진의 황상을 찾아갔다고 전한다. 황상의 저서 《치원유고》에는 추사 김정희와 추사의 동생 김명희가 써준 서문이 적혀있다. 1863년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문집《치원유고》2권과 《임술기 壬戌記》가 전해져 온다.
[네이버 지식백과] 황상 [黃裳] (두산백과 두피디아)

그 다음 좋아하는 단어가 '신용'이다.
아래 작품은 현대 고 정주영 회장 10주기 추모전에 선보였던
정주영 회장이 평소 얘기한 ‘신용’에 대한 글이다. 마음에 많이 와 닿아 작업을 해 보았는데,
전시 후 현대갤러리에서 구매하였다.

신용은 나무처럼 자라는 것이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바른 생각으로 성실하게 자신의 인생을 운영해 나가다보면
신용은 저절로 싹이 터 자라기 시작해서 부쩍부쩍 크고 있을 것이다.

신용, 70x66(2011년)


그 다음은 2020년에 작업한 ‘信用(신용)’이다.
부산 해운대 <장천글숲> 개관전에 선보였던 작품으로
이 작품은 신용에 대한 나의 생각을 짧게 기술했다.

신용은 화초와 같아서
관리를 하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 버립니다.

信用, 68x68(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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