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시 및 행사

모네와 피카소보다 더 아름다운 미술관 가는 길

by 장천 2022. 11. 8.
728x90

며칠 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보기 위해 지하철 대공원역에 내려 국립현대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길은 이건희 컬렉션 못지않은 아름다움이었다.

 

아주 가까스로 예약에 성공.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가려면, 승용차는 미술관 바로 위에 주차장이 있기 때문에 쉽게 가면되고, 지하철로 가려면 4호선 대공원역에 하차하면 된다. 2번출구로 나가면 되는데, 나가는 문이 쉽게 되어 있어 출구를 열심히 찾지 않아도 쉽게 나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출구를 빠져나와 정면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서면 코끼리 열차를 타고 국립현대미술관 앞에 하차해도 되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현대미술관까지 15분 정도 걸어가는 여정이 아주 아름답다.

 

대공원역 2번출구
대공원역을 등지고 쳐다보면 멀리 청계산이 보이고 아래 건물로 들어서면 코끼리 열차를 탈 수 있다.

 

 

-지금부터 국립현대미술관까지 걸어가는 여정을 감상해 보자.

미술관 앞
미술관 앞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정문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파블로 피카소 도자 90점과 나머지 7명 작가(클로드 모네, 폴 고갱,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카미유 피사로, 호안 미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회화 7점이 모였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8명의 작가들은 모두 '벨 에포크'(19세기 말~20세기 초)시기 파리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이다.

 

아래의 글은 전시장에서 제공하는 브로셔에 있는 글입니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된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폴 고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호안 미로의 회화 7점과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90점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이들은 미술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혹은 동료로 만나 서로의 성장을 응원해 주며 20세기 서양 현대미술사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간 거장들입니다.

 

이번 전시는 여덟 명의 거장이 파리에서 맺었던 다양한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회화 간 관계성뿐만 아니라 피카소의 도자와 다른 거장들의 회화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통해 거장들이 서로에게 표현한 우정과 존경의 감정으로 충만했던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피사로와 고갱: 스승과 제자로 만난 파리의 두 거장

 

오늘날과 같은 파리의 모습은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낡고 오래된 중세식 도시 파리를 현대화하는 사업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중엽이었습니다. 에펠탑과 센강 변의 다리들, 철골과 유리를 사용한 건물들, 가로등 같은 전기 조명으로 빛을 밝힌 넓은 도로, 그리고 공원이나 유원지 같은 여가 시설도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불과 몇십 년 만에 전례가 없는 현대적인 대도시가 탄생한 것입니다. 젊은 미술가들도 파리의 현대적인 모습을 새로운 예술의 주제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캔버스 위에 포착해 낸 파리의 모습에서 인상주의 미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카미유 피사로(1830-1903)는 파리 근교의 퐁투아즈에 체류하며 그곳의 전원 풍경과 대도시 파리의 모습을 즐겨 그렸던 인상주의의 거장입니다. <퐁투아즈 곡물 시장 (1893)처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장 풍경 역시 피사로가 선호하던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젊은 작가들의 발굴과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던 스승 같은 존재였는데, 폴 고갱(1848-1903)도 그의 제자였습니다.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던 고갱은 피사로가 참여했던 1874년의 제1회 인상주의 미술전>을 접한 뒤 화가로의 전업을 꿈꿉니다. 피사로는 센강 변의 크레인 (1875)을 포함해 고갱이 이 시기에 그린 초기작을 보고 그의 꿈을 응원해 주었습니다. 자신을 따라 퐁투아즈로 이주한 고갱이 인상주의 풍경화를 완벽하게 그릴 수 있도록 지도했고, “인상주의 미술전 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스승 피사로의 따듯한 응원은 고갱이 무명의 화가에서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성장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피사로와 고갱이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을 두 사람의 작품을 통해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우정과 존경으로 서로를 빛낸 거장들

 

인상주의 미술가들 중에서도 유독 친분이 두터웠던 클로드 모네(1840-1926)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파리 근교에서 함께 야외 풍경을 그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의 색채와 형태가 빛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관찰하게 된 이들은 그 순간을 포착해 그리는 것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특히 모네는 물과 안개, 눈과 바람 등 유동적이고 변화가 많은 자연 풍경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1891년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에 정착한 이후로는 정원과 연못을 주제로 한 수련 연작을 제작하는 데 몰두합니다. 르누아르는 야외 풍경 못지않게 카페나 유원지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에도 흥미를 느꼈습니다. 1881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르네상스 미술에 매료된 이후로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고전적인 회화를 주로 그렸는데,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 (1917-1918)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이 제작되던 해인 1917년 파블로 피카소(1881-1973)도 이탈리아에서 고전주의 미술을 재발견하면서, 르누아르의 작품들로까지 그 관심이 이어지게 됩니다. 1904년 고향인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 피카소는 불과 10여 년 만에 청색시대, 장밋빛시대, 입체주의시대를 거치며 젊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상태였지만, 르누아르의 작품은 그에게 새로운 탐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성을 작품의 주요한 주제로 삼았던 점도 피카소가 르누아르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여성을 재현하는 두 거장 특유의 방식은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르누아르의 회화와 피카소의 도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19년 피카소는 그해에 타계한 르누아르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거장 르누아르 에게 바치는 피카소의 존경의 마음 그 자체였습니다.

 

 

피카소, 미로, 달리: 파리의 스페인 화가들과 에콜 드 파리

 

피카소와 호안 미로(1893-1983), 살바도르 달리 (1904-1989)는 스페인 출신의 작가들이지만 이들이 서로를 만난 장소는 파리였습니다. 미로는 1920년 파리를 처음 찾았고, 그곳에서 이미 성공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 피카소를 만났습니다. 피카소는 미로가 파리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고, 이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평생에 걸쳐 친구이자 동료로서의 관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6년 뒤인 1926년에는 달리도 피카소를 만나기 위해 처음 파리를 찾았습니다. 이때 달리에게 피카소를 소개해 주고, 2년 후에는 초현실주의 작가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며 미래의 초현실주의 거장 달리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이가 바로 미로였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 미로, 달리가 파리에서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던 모습은 국제적인 미술 중심지였던 20세기 초 파리의 상황을 잘 드러내 주는 일화입니다. 외국인 미술가들의 파리 유입이 급증하면서 이들을 지칭하는 '에콜 드 파리'라는 명칭이 생길 정도였는데, 각자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과 파리에서 접한 새로운 미술 경향을 결합한 외국인 미술가들의 에콜 드 파리 스타일도 등장합니다. 피카소는 입체주의를 필두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한 작가였지만 늘 고국의 문화적 전통을 잊지 않았습니다. 피카소가 스페인의 전통 기예인 투우를 작품의 주제로 다양하게 활용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피카소, 미로, 달리는 각자의 에콜 드 파리 스타일을 만들어냈지만, 이번 전시에 출품된 세 사람의 작품에서는 몇 가지 공통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처럼 피카소의 도자에서도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 , 별이 있는 밤의 풍경을 추상화한 미로의 회화(1953)는 사람과 새를 주제로 한 피카소의 도자 작품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피카소와 샤갈 :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낸 거장들

 

마르크 샤갈(1887-1985)1910년 고향 러시아를 떠나 미술 중심지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했습니다. 여전히 고향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리면서도 샤갈은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입체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아들여 화면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할하는 구성법을 시도했습니다. 입체주의 미술의 영향력이 절정을 구가하던 시기에 파리에서 활동을 시작한 만큼 샤갈 역시 그 운동을 주도했던 피카소를 직접 만나고 싶어 했지만, 이들의 만남은 쉽게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뒤이은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샤갈은 10여 년간 고향에 머무르게 되는데, 피카소를 만나지 못한 채 파리를 떠나게 된 아쉬움을 달래고자 1914년에는 <피카소를 생각하며 라는 작품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유태인이었던 샤갈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체류하는데, 이 시기에 피카소에게 보낸 편지 덕에 두 사람은 전쟁 종료 후인 1940년대 말 드디어 조우합니다.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진 장소는 피카소가 도자기를 제작하던 남프랑스의 발로리스 였습니다. 이 시기에 피카소는 도자기 제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기 때문에 샤갈이 직접 발로리스를 방문했고, 두 사람은 마두라 공방에서 함께 도자기를 만들면서 오랜 기다림 끝에 성사된 만남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샤갈의 회화에는 염소나 물고기 같은 동물들, 꽃과 정물,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풍경들이 가득합니다. 샤갈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주제들을 피카소의 도자에서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인간, 동물, 자연이 함께하는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이야말로 피카소와 샤갈이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가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폴 고갱, 센강 변의 크레인, 1875, 캔버스에 유채, 77.2x119.8cm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 곡물 시장, 1893, 캔버스에 유채, 46.5x39cm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1917~1920, 캔버스에 유채, 100x200.5cm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 1917-1918, 캔버스에 유채, 46.5x57cm
호안 미로, 회화, 1953, 캔버스에 유채, 96x376cm
가운데 작품_ 파블로 피카소, 큰 새와 검은 얼굴, 1951,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프 각인, 50x47x38cm
마르크 샤갈, 결혼 꽃다발, 1977-78, 캔버스에 유채, 91.5x72.8cm
살바도르 달리, 켄타우로스가족, 1940, 캔버스에 유채, 35x30.5cm

 

아래의 작품들은 모두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입니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오는 21일부터 내년 226일까지 6개월간 진행됩니다.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728x90